이번 글의 마지막 편, 베트남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 왜 세대별로 완전히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지 ...
우리나라와 아주 많이 유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일곱째, 소비자 연령에 따른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베트남 3-40대가 주요 소비층으로서 구매력이 가장 큰 집단이다. 베트남의 1970년대생은 한국의 6.25 세대이다. 미국과의 전쟁이 1975년 끝났지만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캄보디아와의 전쟁이 이어졌다. 베트남이 일방적으로 승리했지만, 경제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캄보디아 전쟁에 불만을 품은 중국이 1979년 30만명으로 침공했지만, 베트남 북부 예비병력과 민병대에 의해 한 달만에 철수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다. 이후 생산수단 국유화와 배급제는 생산력을 떨어뜨려 인민들이 절대 빈곤에 시달렸고 쌀이 부족해 해마다 쌀을 수입해와야 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의 1970년대 생들은 한국의 6.25 세대들과 동일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자산이 꽤 많은데 어렸을 때 기억 때문에 전기도 아껴 쓰고 이면지를 철저하게 사용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어느 사회에서나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들이 사회 핵심 소비계층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과거 10여 년 동안 이 전쟁을 겪은 1960~1970년대생들이 베트남에서 주요 소비 층을 형성하다 보니 소비력이 적을 수밖에 없어 그간 소비재 시장이 더디게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경험이 소비 성향을 결정지은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오토바이처럼 자신을 과시할 수 있고 필요한 물건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주요 소비층인 40대들이 소비를 적극 해주어야 소비재 시장이 커지는데, 이들은 자산을 불릴 수 있는 달러, 금,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다 보니 베트남 소비재 시장이 더디게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1986년 12월 베트남 정부는 위로부터의 개혁 쇄신, 경제 개방을 요구하는 도이 머이 정책을 채택한다. 이윽고 1988년 농경지 자유화를 선언했다. 1988년 45만톤의 쌀을 수입하던 베트남은 농경지 자유화를 선언한지 1년 만인 1989년 100만톤의 쌀을 수출하게 된다. 1995년에는 150만톤의 쌀을 수출하면서 세계 3대 쌀 수출 국가가 된다. 지금은 태국과 더불어 세계 1~2위의 쌀 수출 국가가 되었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태어난 1980년대생들은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유년 시절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게다가 전쟁 직후 베이비부머들인 1980년대생들은 기본적으로 형제가 8~12명이니, 부족한 생필품을 수많은 형제들과 함께 써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내 가족을 위해 내 것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세대이다. 베트남의 1980년대생은 한국의 1958년 개띠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1980년 1인 자녀 정책을 시행한다. 이 점이 베트남 시장과 중국 시장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중국의 1980년대 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용돈과 선물을 받아 재화가 풍족했고 집중적으로 교육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사드 사태가 터지기 전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좋았던 때가 바로 이 1980년대생들이 30대로서 주요 소비계층이었던 시기이다. 베트남 1980년대생들은 수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부족하게 살아서 소비에 꼼꼼해질 수 밖에 없고, 이들이 외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2000년대 초반에 외국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한 세대이다. 외국인과 일하면서 갈등을 겪고 기존 가치관과 다른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기성세대와 갈등을 빚으며 혼란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보통 2명의 아이를 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생들은 어린 시절의 가난함 때문에 돈은 아껴 쓰지만 개방화의 한 중심에 서 있으면서 베트남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자식은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베트남 30대 가정들은 소득의 30%를 자식 교육에 쏟아 붇는다. 소비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생들의 자녀들인 1990년대생들부터는 베트남 시장 전망이 급격히 밝아진다. 베트남 소비자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2011년에 이미 와이파이 천국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베트남 시장은 모자이크 같은 시장이라 30년 전의 한국 모습도 10년 전의 한국 모습도, 그리고 지금의 한국 모습도 모두 뒤섞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1990~2000년대생들은 시간을 건너 뛰어버리는 세대이다. 1991년 미국은 단계적으로 베트남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1994년에는 제재를 전면 해제한다.
결국 1995년 베트남과 미국은 국교를 맺으며 전쟁을 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런 대변혁의 시기에 태어난 1990년대생들은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와 달리 본격적으로 밀려드는 외국상품과 넘쳐나는 식량으로 베트남 근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가 되었다. 형제자매는 한두 명이고 부모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공부에 열중하며 외국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고 홍콩,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라 외국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다. 특히 1998년 대우를 필두로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와 함께 밀려드는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중국과 더불어 ‘한류’를 만들어낸 세대가 바로 베트남의 1990년대생들이다. 현재 30대 초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소비를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자 나이 25세면 노처녀라는 베트남 사회의 인식을 거부하고 자기계발과 커리어 쌓기에 집중하는 세대이다. 또한 2014년 베트남 저가항공사의 급성장으로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아세안 경제 성장 국가들로 여행을 다니면서 글로벌화된 세대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세대이자 페이스북에서 당당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외국어 습득으로 해외 정세에 밝기도 한 세대이다.
호치민에서 대중교통은 호치민 시민 9.2%의 이동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부족한 대중교통을 그랩과 택시가 보완해주고 있다. 호치민을 가보면, 많은 시민들이 그랩을 이용한다. 비용도 저렴하고, 특별히 베트남어를 하지 않아도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대부분 그랩을 선호한다. 정말 편리하다. 베트남에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배달 서비스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 돈으로 1,500원짜리 버블티 한 개도 15분 내에 배달이 되는 진정한 배달의 천국이다. 방콕,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대도시 소비형태는 쇼핑몰이다. 화교가 모든 경제를 장악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쇼핑몰에서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데 베트남에서는 몰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대신 로드숍에서 음식, 화장품, 식료품 등 모든 것이 배달된다. 정부가 잘 깔아놓은 인터넷 환경과 높은 스마트폰 사용률이 결합되어 모바일을 이용한 배달 문화를 가장 애용하는 사람들이 베트남의 20대 들이다.
2000년대에 태어난 2K 세대들은 베이비부머인 1970년 후반과 1980년대생들의 자녀로 모바일 퍼스트 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고, 해외기업과 외국 문물이 친숙하고 당연한 일상의 모습들이다. 전쟁을 겪고 먹을 것을 걱정하던 자신들의 부모 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 덕에 어지간한 공장 노동자 월급의 50%에 해당하는 학원비를 내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상류층들은 베트남 내 국제학교에 보내거나 영국, 호주, 싱가포르로 유학을 보낸다. 이러한 2K 세대들이 사회 초년생이 되어 구매력이 커지는 2020년부터 베트남 소비재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는 이유이다. 또한, 하노이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호치민은 2023년말 개통을 앞두고 있다. 2K세대가 2020년부터 해마다 100만명씩 성인이 되고 있다.
베트남의 시장은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제조 기지로서의 베트남으로 시작했지만, 시장으로서의 베트남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참고: 이번 글은 "왜 베트남 시장인가"에서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